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문단 편집) === 초창기 === [[http://kr.blizzard.com/ko-kr/company/about/b20/videos.html#blizzard-retrospective|블리자드의 20년 역사 회고 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XNk5A_OcfEg|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다큐멘터리:파티 찾기]] [[https://www.snek.ai/alpha/article/107397|‘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콜 오브 듀티’의 모회사, 액티비젼 블리자드]] [[https://youtu.be/Gi_FpK9z_gQ|블리자드 25년 역사 회고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phUgzmvBZ3I|영문판]] 나레이션은 [[마크 해밀]]/한국어판은 [[김기현(성우)|김기현]]. [[홍진호|2:22]]에 한국인을 위한 [[홍진호|이스터 에그]]가 있다.] [[https://blizzard.gamespress.com/Blizzard-Entertainment-29525|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역사]] [[https://m.blog.naver.com/businessinsight/221284869671|#]] [[https://naver.me/F5L8fEaN|#]] [[https://naver.me/xDjB9W5p|#]] [[https://naver.me/xaP4BVdG|#]] [[파일:실리콘&시냅스 시절.jpg|width=300]] 1991년, [[UCLA]]의 전기공학도 출신인 [[마이크 모하임]][* 이 때 자신의 할머니에게서 1만 5000달러를 빌려 창업 자금으로 썼는데 아직까지도 그 수표는 블리자드 기록 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다. 그의 할머니는 첫 블리즈컨을 개최하기 일주일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앨런 아담|앨런 애드햄]], [[프랭크 피어스]]가 모여 실리콘 & 시냅스(Silicon & Synapse)라는 이름으로 창립한 회사가 그 시초다. 실질적인 창립자는 앨런 애드햄으로, 파트타임으로 인터플레이나 시에라에서 게임 개발을 도왔던 애드햄이 졸업한 뒤 게임 개발사를 차리기 위해 같은 학과 친구인 모하임과 피어스를 설득해 회사를 차린 것이 실리콘 & 시냅스의 시작. 프로그래머들이 모여 만들었다는 루머가 퍼져 있는데, 당시 게임 제작을 비롯한 IT 쪽 개발자들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모두 친숙해야 했기 때문에 틀린 말은 아니다.[* 당장 FPS 장르의 정체성을 정립한 [[둠]]은 [[이드 소프트웨어]]의 창립자인 [[존 카맥]]이 프로그래밍을 맡았고, [[하프라이프 시리즈]]로 유명한 [[밸브 코퍼레이션]]의 창립자인 [[게이브 뉴웰]]은 이전에 [[마이크로소프트]]의 [[Microsoft Windows]] 개발 부서에서 주요 프로듀서로 일했다. 블리자드 또한 마찬가지로, 로스트 바이킹의 맵 에디터는 창립자인 마이크 모하임이 만들었다.] 경영학도라는 루머가 그 의외성 때문인지 상당히 퍼진 적이 있었는데 3명 다 전기공학 학위를 땄다. [[http://www.engineer.ucla.edu/newsroom/featured-news/archive/2006/november/ucla-engineering-celebrates-accomplishments-at-annual-awards-dinner|#]] [[파일:attachment/ss_3.jpg]] 실리콘 & 시냅스 로고. (이 로고의 사지 달린 뇌는 훗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http://kr.battle.net/wow/ko/item/38273|몇몇 아이템]] 혹은 스킬 아이콘으로 등장한다.) 실리콘&시냅스는 보드 게임의 유통과 비디오 게임을 [[아미가]]와 [[슈퍼 패미컴]]용으로 컨버전하는 작업을 맡던 소규모 회사였다. 하지만 PC 사업 측의 플랫폼인 아미가가 업계의 주류가 되지 못해 컨버전 작업이 큰 수익을 내지 못했고, 콘솔 사업은 컴퓨터 쪽보다 소규모로 운영하고, 자체 제작 게임들도 히트작이 나오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렸다. 적자로 문을 닫기 직전인 최악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유럽쪽의 사업 파트너였던 [[인터플레이]]의 자회사가 되는 것을 고려하기도 했다.[* 당시 [[인터플레이]]의 창립자인 [[브라이언 파고]]가 블리자드의 창립자 중 하나인 앨런 애드햄과 동네 이웃 사이였고, 마이크 모하임과도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데이비드 크래독의 'Stay Awhile and Listen'에 따르면, 브라이언 파고는 인터플레이의 콘솔 게임 퍼블리싱을 개척하고자 RPM 레이싱을 개발 중이던 초기의 블리자드에 카트리지 제작비를 지원하는 등 꽤 과감하게 투자했다.] 이때 회사 운영비를 감당할 수 없던 앨런 애드햄과 마이크 모하임은 카드 돌려막기로 직원들의 월급을 지불했다.[* 이로 인해 모하임에게 자금난의 공포가 각인되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3년 동안 방황한 끝에 실리콘&시냅스는 [[1994년]], 당시 교육용 소프트웨어로 유명했던 데이비슨 & 어소시에이츠 아래로 들어가게 되었고 회사 이름도 카오스 스튜디오로 바꿨다. 그러나 먼저 이름을 선점한 회사가 10만 달러의 사용료를 내라고 하자 자금적 여유가 없었기에 다시 이름을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Blizzard Entertainment)로 바꿨고 그렇게 현재까지 쓰고 있다. 회사 이름을 바꾼 이유는 그들이 전에 자체 제작한 게임인 로스트 바이킹, 락앤롤 레이싱이 별로 흥행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시냅스라는 단어가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단어가 아니었기 때문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http://www.multiwriter.co.kr/956|#]] 또한, 데이비슨 & 어소시에이츠의 창립자인 밥 데이비슨과 잰 데이비슨 부부가 블리자드 직원들의 사내 문화를 존중해 준 덕에 초창기의 기업 문화를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블랙쏜]]과 [[저스티스 리그 태스크포스]] 등의 게임으로 꾸준히 인지도를 쌓은 블리자드는 첫 퍼블리싱 작이자 첫 히트작인 [[워크래프트: 오크와 인간]]을 발표한다. 본작의 호평과 후속작 [[워크래프트 2]]가 크게 히트하면서 [[웨스트우드]]와 어깨를 견주는 [[RTS]]계의 다크호스가 된다. 이후 저스티스 리그 태스크포스 건으로 서로 알게 된 [[블리자드 노스|콘도르(Condor)]]가 개발 중이던 [[로그라이크]] 게임 [[디아블로(게임)|디아블로 1]]을 눈여겨보고, 제작비와 인력을 지원해주다 결국 콘도르를 인수, 디아블로를 발매한다. [[배틀넷]]이라는 독창적인 인터넷 연결 플레이 방식에 힘입어 디아블로는 세계적인 스터디셀러가 된다.[* 인수 후 6개월만에 발매되었다는 이유로 블리자드의 영향을 부정하는 측도 있으나, 당시의 콘도르는 기존 계약사인 선소프트의 지원 미비로 자금난을 겪고 있었고, 블리자드가 참여한 뒤에야 본격적으로 디아블로의 제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또한, 블리자드가 참여하기 이전 기획서 단계의 디아블로는 완성된 게임과 매우 다른 지향성을 가지고 있었다.] 1996년부터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는데 이는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주인이 1998년까지 여러 번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선 1996년 CUC 인터내셔널은 블리자드의 모기업 데이비슨 & 어소시에이츠를 인수하였다. CUC 인터내셔널은 이후 여러 기업들을 인수합병한 후 1998년 Cendant를 설립했는데, 그해 [[분식회계]]가 들통나 바로 데이비슨 & 어소시에이츠와 [[시에라 엔터테인먼트]] 등의 기업들과 함께 [[프랑스]]의 광고대행기업인 아바스에 매각해 버렸다. 그리고 다시 같은 해 아바스를 프랑스의 미디어 그룹인 [[비방디]]가 인수하면서, 비방디 그룹의 산하 회사가 되어 안정적인 개발 환경을 갖추게 되었다. [[https://m.blog.naver.com/rpgrr123/222513676504|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역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